봄이 완연해지면 삶의 의욕이 돌아옵니다. 1월이 되면 반짝, 하고 의욕이 샘솟다가도 칙칙한 2월을 웅크리며 견디고, 예전 같으면 꽃샘 추위 몇 번 이후 서서히 봄에 들어서야 하는 달이지만 이제는 패딩을 넣어야 하는지 입어야 하는지 사람 헛갈리게 하는 시기로 변모한 3월까지 쭉 코트 주머니에 넣고 잊어버린 장갑처럼 지냈습니다.
해가 뜨겁게 피부를 태우고 긴팔 한 장만 입고도 걸어다니기 충분한 날씨가 되어서야 몸은 경칩 맞은 개구리처럼 깨어나 ‘아, 비로소 봄이로구나.’ 깨닫나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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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자기계발서를 읽어요
휴식하며 쌓은 에너지를 일시불로 긁고 싶은 충동에 항상 시달립니다. 반대 축에는 창문을 열어둔 다음 이불에 감싸여 새 소리나 들으며 누워 있고 싶은 충동이 있습니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는 충동과 모든 걸 다 하고 싶은 충동은 제 대다수의 행동을 유발하는 동인입니다.
새봄에는 부지런히 움직이자는 욕망이 승리했습니다. 아예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니지만 작년의 미친 페이스에 비하면 느리다는 기분입니다. 낮아진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 자기계발서를 찾아 읽습니다.
하브 에커, <백만장자 시크릿>
나선숙 옮김, 편기옥 감수, 알에이치코리아(RHK)
데릭 시버스, <진짜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사는 법>
정지현 옮김, 현대지성
크리스 베일리, <일하는 시간을 줄여드립니다>
황숙혜 옮김, 알에이치코리아(RHK)
제목만 봐도 대충 무슨 흐름인지 아시겠죠. 부자가 되고 싶었다가, 어떻게 하면 좋아하는 일 로 부자가 되지? 싶었다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생산성을 내고 싶어졌다…. 그렇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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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최소한의 효율로 최대한의 부를 축적하는 법은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뭘 원하는지 (또다시!) 고민하고, 그걸 위해 어떻게 지금 있는 자산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지에 대한 실마리는 잡은 것 같아요.
각 책에서 제일 좋았던 부분만 발췌할게요.
우리는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이 내면의 힘을 길러 성공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는데 여기서 가르치는 원칙 하나가 ‘준비, 발사, 조준!’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준비하고 조준한 다음에 발사하는 게 정석 아닌가? 우리의 생각은 다르다. 최대한 짧은 시간 내에 최선의 준비를 하고, 행동을 취하고, 그 후에 수정작업을 거치며 계속 나아가면 된다.
하브 에커, <백만장자 시크릿>, 118-119p
그럭저럭 좋은 것들에 빠져 위대한 것을 놓치지 마라. if you’re not feeling “hell yeah!” then say no.
데릭 시버스, <진짜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사는 법>, 58p
생산성을 측정하는 최선의 방법은 하루 일과를 마친 뒤 스스로에게 지극히 단순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계획했던 일을 해치웠는가? (중략) 하루 동안 휴식을 취하기로 마음먹고 최근 1년 중 최고의 휴식 시간을 보냈다면 당신은 완벽하게 생산적인 사람이다.
크리스 베일리, <일하는 시간을 줄여드립니다>, 47-48p
마음을 울리는 구절이 있었나요? 지금 당장 책방으로…! (광고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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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피어난 만화책 페어
어제(4월 27일 토요일)는 도이님, 란탄님, 우야님이 개최한 ‘칸새 mini’에 다녀왔습니다. 내년 1월에 예정되어 있는 ‘칸새’의 미니 버전으로, 상주 작가 없이 책만 전시 및 판매되는 형태의 ‘독립출판만화 판매전’입니다.
오전 11시에서 6시까지 운영한다고 하여 모꼬지 코믹스 작가님들과 오후 4시쯤 느지막히 찾아갔다가 엄청난 줄에 당황하였죠. 행사장은 2층인데, 1층 건물 밖부터 시작된 줄은 계단참을 따라 올라가다가 1.5층에 있는 외부 공간에 세 줄로 늘어서게 되고 마지막으로 1.5층에서 2층 직전까지 이어집니다. 대기하다가 입장료 천 원은 현금으로만 받는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어 중간에 부랴부랴 편의점 ATM에서 돈을 뽑고 근처 카페에서 페퍼민트 티를 사 마시는 수고를 들여 지폐 천 원권을 손에 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이 지폐는 마찬가지로 현금을 챙겨오지 못한 모꼬지 코믹스 작가님들을 구제하러 떠났습니다).
오로지 만화만 다룬 독립출판 페어가 없었기 때문에 관람객들의 기대가 큰 것 같았어요. 저도 그렇고요. 우야님의 작업실 안에 꾸려진 행사장은 햇빛이 따끈하게 들고 고양이 두 마리가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아늑한 공간으로, 뜨거운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전시된 만화책을 준비된 책상과 의자에 자리잡고 느긋하게 읽었습니다.
재고가 각 5권씩이라 오후에는 이미 80~90%의 책이 완매된 이후였지만 샘플 책이 있어서 열람은 가능했어요. 언리미티드 에디션처럼 큰 북페어에서는 보지 못한 책들도 있어서 또다시 마음에 불어오는 신선함을 느꼈습니다.
올해도 아마 11월에 열릴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참가 신청서도 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있는 만화가 그 때까지 완성되지 않을 것 같아서요. 하지만 내년 1월이라면 어떨까요?
칸새에 참여하려면 만화책, 올해 말에는 꼭 완성해야겠군요. 새로운 데드라인을 얻어 돌아온 주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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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적인 새로운 도전
하던 일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것도 좋지만 아예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도 좋습니다. 인체와 투시 공부는 언제나 마음의 숙제였습니다만 혼자서 연습하려니 동력을 잃고 다른 작업에 밀리기 일쑤. 올해는 다른 사람의 손을 빌어서라도 개운해지고 싶은 마음에 학원을 알아봤습니다.
인터넷에서 이리저리 근처 학원을 검색하다가 모 학원의 커리큘럼 페이지에 안착했습니다. 개인 맞춤으로 커리큘럼을 짜 준다는 게 매력적인데 구체적인 커리큘럼이 없네요. 주말반이 있는지, 몇 시간 수업인지도 없고요. 이름과 연락처를 넣으면 학원 수강료를 알려주겠다고 하여 대충 이름란에 ‘ㅇㅇㅇ’으로 정보를 적어 남겨놓습니다.
반나절 지나 전화가 옵니다.
“이응 이응 이응… 님 맞으신가요?”
“예?”
“모 학원인데요, 온라인 상담에 이응 이응 이응으로 이름을 남겨주셨더라고요.”
“…아! 네 접니다!”
전화가 올 줄은 몰랐지요. 온라인 페이지에서 전화 상담으로, 전화 상담에서 대면 상담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숙련된 마케팅. 결국 오늘 대면 상담을 하고 왔는데요, 결론적으로는 실망스러웠습니다. 기초 다지기라는 게 특출난 커리큘럼이 있긴 어렵지만 가르쳐주시는 분 따로, 상담하는 사람 따로인 구조에서 배우는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긴 힘들더라고요.
금액도 적지 않았고, ‘정원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미리 결제를 해 두지 않으면 듣기 힘들다, 수업을 놓치는 경우를 많이 봤다’는 멘트까지 듣고 나니 여기는 안 된다는 마음이 강해집니다. 어쩔 수 없죠. 다음 주에는 만화과 입시 학원에 가서 성인반 상담을 해봐야겠습니다.
그림 말고도 다른 도전이 있습니다. 오키로북스에서 주최하는 러닝 클럽 5월 기수에 등록했어요. 런데이 앱의 30분 달리기 8주 완성 코스를 세 번이나 도전했지만 각 도전마다 10번 이상 달릴 수 없었던 과거가 있어서 ‘난 달릴 수 없는 몸이야….’라는 고정관념이 생겼지만, 야쿠시마 열 시간 산행을 다녀오고 나서는 ‘함께 하면 되는 거 아닐까?’라는 희망을 얻었습니다.
1km 달리면 20분 남짓이라고 해요. 딱 하루에 1km, 한 달 뛰어보려 합니다. 괜찮으면 다음 달도, 다다음 달도 해보려고요.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고 있지만 죽어도 그 시간 외에는 헬스장에 가지 않는 제게는 아파트 단지를 짧고 굵게 뛰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클럽에 등록한 뒤엔 득달같이 러닝화, 러닝 벨트, 러닝 양말까지 사버렸어요. 야쿠시마 산행이 자꾸 핑계거리로 등장하는 것이 미안하긴 하지만 그 때 ‘등산화를 신고 등산하는 것’의 참맛을 깨달았거든요. 발바닥이 터질 것 같던, 심장 박동과 동기화된 동통이 오던 과거는 안녕. 발바닥을 탄탄하게 잡아주면서도 충격을 흡수하는 감각에 ‘등산화 없었으면 내 하체는 여기 버리고 갔어야 했어….’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러닝도 마찬가지...겠죠? 뛰다가 발바닥 터지면 안 되니까요. 발목 나가도 안 되고요. 다 잘 샀다고 해주세요. 물론 택배는 아직 오지도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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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새 계절인걸!
칸새 mini에 갔다가 모꼬지 코믹스 작가들 모두 함께(사정이 있어 급히 떠난 연제님을 제외하고) 맥주 한 잔과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못니 작가님이 “벌써 올해도 다 갔고…”라고 푸념하듯 말하는 거 아니겠어요.
아직 4월입니다, 그리고 봄(혹은 여름)은 푸르른 신록. 저조차도 ‘올해 절반이 갔는데 뭐하고 있는 거야….’라고 자주 생각했지만 “올해도 다 갔다”는 선언을 들으니 저항하고 싶은 마음에선지 “예에? 뭐라고요?”라고 과장해서 대답해버렸습니다.
“아직 여름도 오지 않았다고요!”
“맞아! 난 11월에 개인전 하는데 아직도 작업 시작 안 했다고요!” (이건 정민 작가님)
아직 새 계절입니다. 상반기도 지나지 않았고 여름도 이제 초입. 조금 늦게 움튼 마음은 지금을 새봄이라 생각하며 햇살 아래 전성기를 맞이한 개미처럼 분주합니다. 작업도, 공부도, 운동도, 새봄을 위해 예비된 즐거운 일들. 올해의 따뜻하고 더운 계절도 나무처럼 번성하며 통과해보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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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립니다.
'마진오의 비밀편지'는 5월부터 한 달에 한 번 발행될 예정입니다. 특히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아래의 링크로 조용히 귀띔해주세요. 편지 쓰기 전에 읽어보고 소식에 반영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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