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버찌와 뚠따따> 연재가 끝났습니다. 2월 말에 동그람이로부터 연재를 종료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예상 못한 일이었습니다. 올해 말에는 마무리해야지, 라는 결심이 있긴 했습니다만 그것보다 빨리 문을 닫다뇨. 요청을 받고 남은 건 한 달. 어떤 이야기로 네 편을 정리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최종화에 가기 전 세 편은 평상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으로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헤어짐을 상기시킬 필요는 없으니까요.
마지막 화는 닷새간의 해외 출장을 다녀오고 나서 부랴부랴 그렸습니다. 업로드 전날 밤에야 원고를 송부할 수 있었어요. 담당자분께 양해를 미리 구하고, 수요일 밤에 메일을 보내면서 헛웃음이 났습니다.
'마지막까지 이러네...'
그 후 일주일간 내내 아팠습니다.
출장에서 얻은 몸살 감기가 번졌고 주말에는 심하게 체를 했지요. 그 다음 원고 마감일이 올 때까지 쭉 골골댔습니다. 이번에는 마감할 원고가 없어서 휴재한다고 미리 에디터분에게 말할 필요도, 휴재 공지용 이미지를 만들 일도 없었다는 점만이 달랐습니다.
회복하고 나서는 몇 달 전에 미리 잡아둔 일본 여행을 갔습니다. 후쿠오카에서 한 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야쿠시마’라는 곳입니다. 일 년에 350일 이상 비가 오는 축축한 섬이에요. 화강암이 지배적인 토양에 매일매일 비가 내리니 언제나 쓸려내려가는 흙 대신 이끼가 자리를 잡고, 나무들도 흙에 뿌리를 내리는 대신 이끼로부터 삶을 시작하여 여기저기 발 닿는대로 뿌리를 뻗어 나갑니다.
산간지대에는 천천히 자라는 삼나무들이 자연림을 이루었습니다. 야쿠시마의 주요 경제활동은 벌목과 어업이었던 것 같아요. 벌목꾼들은 돌로 등산로를 놓고, 그 다음엔 나무와 레일로 철길도 놓았습니다. 벌목한 나무를 수레 크기의 조그만 열차에 실어 산 아래까지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이 오래된 삼나무 지대는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에 등재되어 열차는 더 이상 다니지 않습니다. 이제 각국에서 날아온 등산객들이 벌목꾼들이 사라진 자리를 채웁니다. 철길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두 시간 남짓 야트막한 경사로를 걸어 올라간 다음, 화강암과 나무뿌리로 이루어진 등산로를 따라 두 시간 반을 더 올라갑니다. 등산로의 끝에는 ‘조몬스기’라고 이름이 붙은 최고령 삼나무가 있습니다. 수령이 몇 천년에 이르는 커다랗고 오래된 나무입니다.
조몬스기를 보고 내려오면 출발한 시간으로부터 10시간 넘게 흘러 있게 됩니다. 이 코스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등산을 즐긴 적 없지만 9시간의 트랙킹이 포함된 야쿠시마 여행 패키지를 결제할 때에는 왠지 나무를 많이 많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습하게 번지는 초록색의 이끼숲을 보고 싶다고, 하루 종일 그 안에서 걷고 숨쉬고 싶다고, 그런 열정에 포획되어 섣불리 결제를 해버렸습니다.
실제 산행은 낭만화된 상상과는 달랐습니다. 새벽 세 시 반에 일어나 비몽사몽 산행 준비를 한 후 숙소를 떠난 게 새벽 네 시. 등산로 초입까지는 일반 차량의 운행이 금지되어 셔틀버스로만 갈 수 있습니다. 셔틀버스 승차장에서 숙소에서 싸준 도시락을 10분만에 먹고, 버스로 35분을 더 이동합니다. 아직 어둑하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새벽, 매표소에서 표를 사서 철길로 향하면 대장정이 시작됩니다.
느긋하게 주변 경치를 보며 걷는 산행을 기대했지만 야트막한 경사로에 깔려 있는 철길을 가이드는 사정없이 빠르게 주파했습니다. 새벽 5시 50분에 시작된 산행. 레일 사이 깔린 딱딱한 나무판을 밟고 엄청난 속도로 걷습니다. 버찌가 한 살, 한 살 반 이럴 때 걷던 속도가 생각났어요. 냄새를 맡는다든지 주변을 살필 여유도 없이 그저 직진만 하던 때지요.
몸은 이미 무리한다고 느꼈는지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손 마디가 퉁퉁 붓고 입 안에는 동그랗게 물집같은 것도 잡혔습니다. 철로만 걷는데도 어지럽고 힘들어서 남은 8시간 이상의 산행은 어떻게 진행될지 아찔했습니다. 전날 면세점에서 사 온 초콜릿을 필사적으로 입에 욱여넣으며 걸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