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영점이 각기 다른 데 맞춰졌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은, 살면서 많이도 찾아오지만 당할 때마다 놀랍니다. MBTI가 인기 있는 까닭은 각 유형이 스펙트럼의 양 끝부터 시작하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극단적으로 다른 곳에 맞춰진 영점을 대조할 수 있으니까. 예를 들어서 모든 선언에 ‘왜?’라고 답하는 극단적인 T형과 ’그렇겠구나‘라고 공함해버리는 극단적인 F형. 어떻게 상대방의 기본값이 논리적 선후관계에 맞춰져 있는지, 아니면 감정적 동기화에 맞춰져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담과 설명들.
’모든 것을 싫어하기‘와 ’그래도 결국 사랑하기‘ 사이의 스펙트럼도 있습니다. 저는 기본값이 ’모든 것을 싫어하기‘에 맞춰진 사람입니다. 이게 싫고, 저게 싫고, 그 와중에 소수의 좋아하는 것만이 뚜렷이 떠올라 있어서 선택할 때 거침이 없고 행동거지가 거칩니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될 뿐이고, 나머지는 싫으니까. 부드럽게 열린 가능성을 재본다거나 상대방에게 먼저 물어본다거나, 그런 사려깊은 부드러운 행동이 곧바로 배어나오지 않습니다.
연애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살아 있는 불완전한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느낄 수 있는지 의아할 뿐이고, 연예인이나 아이돌을 따르는 사람을 보면 쏟을 사랑이 어떻게 저토록 많은지 부럽습니다. 이런 상황을 이해해야 할 때마다 저는 사랑받는 상대방에 버찌를 대입해 봅니다. 그렇게 해야만 가까스로 아, 그렇군, 하는 소리가 나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으면 주인공인 미도리와 와타나베가 ‘싫어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오죠(이 책을 고등학생 때 읽었는데, 야한 책이어서 인기가 많았어요). 집에 무려 1996년에 나온 2판 31쇄 - 1989년에는 초판 1쇄, 1994년에는 초판 24쇄, 여러분, 책이 이렇게 인기있는 매체일 때가 있었답니다 - 가 있는데, 그 때는 책 값이 6,200원이었네요.
「자기 이야기 좀 해줘요」 하고 미도리가 말했다.
「내 어떤 이야기?」
「글쎄…… 어떤 게 싫어요?」
「닭고기와 성병과 그리고 말이 많은 이발사가 싫어.」
「그 밖에?」
「4월의 고독한 밤과 레이스 달린 전화기 커버가 싫어.」
「그 밖에?」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밖에 특히 생각나는 게 없는데.」
「나의 그이는 - 즉 전의 그이는 싫어하는 게 많았어요. 내가 아주 짧은 치마를 입는 것이라든가 담배 피우는 걸 싫어했고, 금방 술에 취한다든가 야한 말을 한다든가 그의 친구들 욕을 한다든가…… 그러니까 그런 나에 관해 싫은 게 있다면 서슴없이 말해 줘요. 고칠 수 있는 건 고쳐나갈 테니까.」
「아무것도 없어.」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문학사상사(1999)
주인공 와타나베, 작중에 나오는 인물들과 매번 섹스하거나(삽입을 안 한다고 섹스가 아닌 건 아니지요, 와타나베) 섹스하기 직전의 분위기가 되기 십상입니다. 성병이 싫은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러면 콘돔을 열심히 쓰거나 좀 더 조신하게 지내는 게 어떨까 싶지만… 요점은 이것이 아니고, 그가 싫어하는 게 손에 꼽을 정도인 걸 읽고 고등학생 때에도 놀랐습니다. 아니 저게 끝인가? 레이스 달린 전화기 커버가 ‘싫어하는 것 Top 5’에 꼽힐 정도로 싫어하는 게 희박하다고?
싫어하는 것의 리스트를 만들자면 지구 끝까지 채울 수 있는 것이 저인데요. 미도리의 전 남자친구같은 타입이란 말입니다. 담배 피우는 것이 싫고(이 한 문장으로부터 많은 ‘싫음’을 우물에서 물 긷듯 실어올릴 수도 있습니다), 뺨이 에일 정도로 추운 날도 싫고, 습하고 더워서 이불이 살에 달라붙는 날도 싫고, 대중교통 의자에서 1.2인분을 차지하는 눈치 없는 남자도 싫고, 마늘과 소주 냄새를 풍기면서 광역버스 옆자리에 타는 사람도 싫고, 편도로 한 시간 반이 넘는 통근 시간도 싫고, 이동 시간이 편도로 40분만 넘으면 멀다면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목격하는 것도 싫고….
그래서 사랑하고 보듬고 무너진 것을 일으키고 함께 괴로워하는 것이 삶의 기본값인 사람이 쓴 책을 읽으면 새삼스럽습니다. 이렇게 사랑할 수 있다고? 사람도 세상도 존재도? 오랜 시간 응시하고 살피고 마음에 담으면서, 동그란 조약돌을 더듬듯 좋아할 수 있다고? 그런 의문을 가지고 주머니 속에 오래 둔 손처럼 눅눅한 온기가 도는 글을 괴로워하면서 읽어 내려갑니다. 아 눅눅해, 아, 하고 몰래 몸을 탈탈 털면서.
예전 같으면 감히 집어들지 않았을 책입니다. 구질구질한 감수성에 져서 자존심 상할까봐 책등의 내용 소개만 읽고 내려놓았을 책을 이제는 사서 읽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엉망진창이고 냄새 나는 세상에 온 몸을 던지는 용기를 어디서도 접할 수 없으므로. 인스타그램에 떠도는 MBTI 분석글을 읽는 것처럼, 연약한 사람들은 이런 식의 용감함으로 상대를 껴안는군- 하고,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겹쳐보기도 하면서 읽는 것입니다.
다른 이를 향해 뻗는 마음을, 아픈 잇몸을 건드리는 혀처럼 조심스런 마음을 글자를 통해 흡수하고 아 역시, 이 기본값을 아무래도 장착할 수 없다 체념합니다. 하지만 눈과 뇌를 통과한 눅눅한 기운은 몸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어딘가엔 들러붙어 남아 있겠죠. 죽기 전의 어느 하루에는 열심히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이해하길 바라며 1월에는 열심히 책을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