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회사, 하와이안 셔츠
요즘 옷장을 열면 도무지 뭘 입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편도로 한 시간 반 거리를 통근하는데요, 버스와 지하철은 덥고 바깥은 추워요. 무작정 껴입을 수도 없고 가볍게 입을 수도 없습니다. 바지야 청바지를 입는다 쳐도 윗도리는 뭘 입어야 할지. 착 붙는 옷을 입으면 밥 먹고 나오는 뱃살이 신경 쓰이고, 헐렁한 옷을 입으면 겉옷에 잘 안 들어갑니다.
이럴 때는 지나간 여름이 조금 그립습니다. 여름 안 좋아하는 편인데도요. 여름엔 뭘 입을지 모르겠는 날엔 무조건 하와이안 셔츠를 입었거든요.
그리고 회사에 가기 싫은 날도 하와이안 셔츠를 입었습니다.
'난 일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
'에어컨 쐬러 간 김에 사람도 만나고 남이 내려주는 커피도 마실 것이다...'
바람 잘 통하는 바지에 샌들까지 신어주면 휴가를 가는 듯한 기분이 만들어집니다(혹은 그런 착각을 하게 됩니다).
하얀색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출근한 날이었습니다. 회사 복장 규정이 느슨하고(크록스와 반바지도 괜찮은 곳이랍니다) 저도 짬이 있어서 가능한 일입니다. 나름 얼굴에 미소를 띠고 출근했는데, 점심 식사를 먹으러 동료들과 이동하는 길에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진오님, 옷차림은 휴가 가는 차림인데 얼굴은 너무나도 회사 다니는 사람이에요."
"휴가 가는 기분 내려고 입고 왔는데 도착한 건 사무실이니까 그렇죠."
"맞아 맞아. 아침에 출근할 때 보면 표정이 정말... 그리고 진오님 특유의 자세가 있어요."
"거북목이요?"
"아뇨, 이렇게 힘이 빠져서, 어깨가 추욱 처져서..." |